
목재를 처음 다뤘을 때의 감촉은 아직도 기억난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묘하게 사람의 체온과 닮아 있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나무를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대화할 수 있는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 결을 따라 손을 움직이면, 마치 나무가 방향을 알려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최근 진행한 프로젝트는 오래된 참나무를 활용한 벤치 제작이었다. 표면에 깊게 패인 흠집과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살리고 싶었지만, 구조적 안정성도 확보해야 했다. 그래서 프레임은 현대적인 금속 구조로 보강하고, 나무 부분은 최소한의 샌딩만 거쳤다. 완성된 벤치는 과거와 현재가 한 자리에 놓인 듯한 독특한 존재감을 가졌다.
목재 작업의 매력은 ‘변수’에 있다. 똑같은 수종이라도 자란 환경과 나이, 절단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옹이나 색 번짐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 오히려 디자인의 출발점이 된다. 가공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생긴 형태를 살려내면,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함이 탄생한다.
디자인을 하다 보면, ‘완벽함’이라는 단어가 오히려 창작을 가로막을 때가 많다. 목재와 작업할 때는 완벽함보다 ‘균형’을 추구한다. 재료가 가진 고유한 성질을 존중하고, 그 흐름 속에서 형태와 기능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은 가구뿐 아니라 공간 오브제, 소품 제작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결국 내가 원하는 건, 누군가 이 작업물을 손끝으로 쓰다듬었을 때 느껴지는 온기다. 그 온기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고,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나무와 디자인이 만나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그렇게 일상의 일부가 된다.
— 서민혁, 보아무브